북경에서의 둘쨋날 밤도 역시 비가 미친듯이 왔다.

잠든 사이에 물에 빠져 죽나;;;싶어서 잠을 못이룰 정도였다.

 

밤새 땅에 쏟아져내린 비가

낮에는 태양열에 그대로;;; 증발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가

해가 지면 어김없이 그대로;;; 다시 땅으로 쏟아진다;;

이 나라의 자연은 참 알기 쉽다;;;;;

 

밤새 빗줄기가 땅을 때리는 소리가 귀가 따갑더니

그 소리가 그치자마자 어김없이 해가 떠오른다.

이 나라의 자연은 정말 알기 쉽다;;;;;

 

 

오늘은 한번만 먹어보면 패턴 파악되는 호텔 조식대신에

동네사람들이 뭐 먹는지 밖으로 나가보자.

중국에서 아침밥 짓는 가정집은 별로 없고 거의 사먹는다고 들었다.

 

숙소는 신시가지가 아니라 북경의 옛 뒷골목胡同에 위치하고 있어

근처에 거;;한 식당 대신 일반인들이 가는 동네밥집;;이 많다.

 

 

7월 19일. 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颐和园.

 

 

집에서 나가 한 10분만 걸었더니 조그맣지만 손님이 들끓는 식당 발견.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흔히 먹는다는

 

 

아침부터맥주啤酒;;;;와 만두包子 그리고 면 두종류.

소고기면牛肉面이랑 또 하나는 기억이 안나네;;;

 

이연복과 백종원이 그렇게 교육시켰으니

만두라고 馒头달라면 쌩 밀가루덩어리;;; 주는거 아시쥬?

속에 고기 채운 만두 먹으려면 포자包子나 교자饺子를 시킵니다.

 

맥주;; 달라니까 아줌마가 맥주요?? 증말?;; 하고 두번 물어봄;;;;

중국사람들은 의외로 존나성실 아침부터 맥주를 먹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역시 맥주 잔은 대충 프라스틱을 내줍니다.

마누라는 불평했지만 이곳에 오면 이곳 문화를 따라야.

 

 

한국 관광객이 중국 식당갈때 꼭 배워야 하는 말이

不要放香菜!고수 넣지 마세요!

라고 많은 가이드북에 나와있습니다만;

현지식을 추구하는 우리는 주는대로;;; 먹었습니다.

 

백종원도 중국음식 하다가 고수 얘기 해주면서

"딱 참고 열번만 먹으면 고수 찾게 됩니다. 저 고수 좋아합니다."

라고 했는데, 여기는 관광화된 식당이 아니고 현지인 식당이라 그런지

 

고수를 넣어도 정도가 있지 장난아니게 퍼부음;;;;;

맛은;;있는데 솔직이 혀가 좀 아프긴 하더라;;;;;;;;

 

 

중국사람들은 집에서 아침 안해먹는다는걸 현실로 느낀게

아침 여덟시인데 사람이 쉴새없이 들어옴;;

우리처럼 앉아서 먹는 사람은 별로 없고 거의 테이크아웃.

제일 많이 찾는 게 두유. 다들 듬뿍 비닐봉지;;에 담아감.

 

먹어봤는데 정말 콩과 간수만 넣은 깨끗한 맛.

화학약품같은거는 약국에;;가기 귀찮아서 안넣는듯?;;;

 

 

오늘 아침에 갈 곳은 자금성을 내려다보는 경산공원景山公园

어제 우리가 그렇게 사람에 치인 자금성紫禁城 바로 뒤에 솟아있다.

 

지도상으로는 우리 숙소에서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닌데

북경이 서울의 스물다섯배;;;크기라서;;;

실제로 갈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거리상로는 숙소에서 어제 간 천안문까지의 절반.

그러나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한 마누라가 가이드북을 보면서 고뇌중이다.

 

 

은 버스가 정답입니다.

 

마음이 가벼워진 김에 또 모닝버스에서 한잔.

내가 아직 중국에서 택시;;;는 좀 불안해.

웬지 중국 택시를 타면 만두가;;;될것같애.

 

버스를 타고 나니 그저 안심이 된다.

어디에 내리면 되는지만 구글지도를;;보고 대충 파악하자.

 

북경 시내의 대중교통은 매우 잘 되어 있다.

북경 전체가 수백년전부터 계획된 도시라

바둑판처럼 짜여진 도로와 대중교통이 매우 규칙적이다.

 

..근데 중국어를 읽을줄 알아야겠죠?;;

 

 

 

얼마 안가 도착한 경산공원은 음;;; 분위기가 좀 저렴하다;;;

역사어린 문화재와 최근 공구리친 made in China;;가 구별없이 섞여있다.

 

노란 바탕에 붉은 忠 글씨는 베니어판을 본드로 붙인겁니다;;;

입구에서부터 첫인상이 안구를 강렬하게 테러한다;;;;;;

 

어제 사람에 묻혀죽을뻔한 자금성과는 판이하게 여유있는;; 줄.

궁궐;이라기보다는 그냥 동네 공원이라는 느낌.

줄 서는 사람 구성부터가 젊은이들은 씨가 마르고 할배 할매투성이;;

 

자리잡고 앉아 술 한잔하면 딱 좋을 저 건물이 여기의 정상인데,

거기까지 올라가는길에 내려다본 사람 하나 없이 안개낀 자금성.

자금성은 멀리 떨어져 볼 때가 운치있다.

 

엔간;;;하면 저기 들어가서 사람의 파도에 쓸려다니지 말고

그냥 여기서 보면서 아아 멋있구나... 하고 착각;;해주는걸 추천.

 


계단을 통해 정상 끝까지 올라갔더니

 

아니나다를까 아침부터 자금성은 헬게이트;;;

멀리서 봤더니 농민군이 떼지어 궁궐을 습격하는 비주얼.

 

중국의 모든 문화재는 사람을 빼고 봐야 훌륭합니다.

 

 

 

우리는 관광객;;이니 저기서 사진 찍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굳이 학사모 쓰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V 하고 사진찍고 싶어하는 본토민의;;감정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 V 하는 손끝이 구부정;;한걸 보니 본인도 존나 오글거리나요.

 

 

 

위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눈에 뜨이는게 모조리

북경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는 궁궐의 지붕 꼭지들.

저것들이 다 북경의 황제가 임명한 왕들이 살던 집들.

 

하나 하나가 일일이 관광지;;;이긴 한데

규모로 따지면 자금성에 결코 비할 바가 아니고

복원;;의 수준으로 따지면 뽄드;;;로 대충 붙여놓은데다

위풍;;으로 따지면 이미 열강들이 비싼건 다 털어가서;;;

 

'원래는 금이었는데 독일군이 들고가서 그냥 금칠임.'

'원래는 옥이었는데 네덜란드군이 들고가서 그냥 돌임.'

'원래는 존나 궁궐이 있었는데 영국군이 불태워서 기둥만 남아있음.'

 

이따위 썰렁한 가이드나 듣게 됩니다.

멀리 떨어져 지붕만 보고 과거를 상상;;하는걸 추천합니다.

저기 가 봤자 사람한테 치이기만 할 뿐.

 

 

중국에 남아도는 건 공터.

아침마다 노인과 아지매들이 모여 태극권;;을 한다고 들었는데

 

대장금; 주제가 오나라;;를 틀어놓고 덩실덩실 춤추고 있음;;;;;

한류가 중국의 문화를 망치고 있어;;;;; 권법을 하란말야 권법을;;;

 

https://www.youtube.com/watch?v=QIXrVSHvLIo

bgm을 들으면서 보면 사진이 움직인다

 

 

사실 이 별 가치없는 풍경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온 것은

 

바로 이 스팟 때문이다.

 

 

이하, 이 색깔로 쓰여진 글씨는 한자덕;;혹은 역덕;;내지 무협덕;;이 아니라면 넘어가도 좋다.

 

 

설명을 시작해볼까?

 

 

이 비석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자금성에 농민군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목을 매어 자살한 장소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6348&cid=40942&categoryId=34308

오삼계()를 평서백(西)으로 삼아 베이징[]의 방위를 맡겼다. 하지만 신료()들은 속속 반란군에 투항하였고, 4월 21일에는 베이징[]이 포위되었다. 결국 1644년 4월 25일( 17년 3월 19일) 베이징[]이 함락되자, 숭정제는 처첩()과 딸을 죽이고 자신도 징산[]에서 자살하였다. 

 

 

숭정제가 목을 매어 죽은 홰나무는 이후 청나라 시절에

황제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를 물어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명나라 백성들을 청나라 정권은 달래주어야 했거든.

 

그런데 일단 그 쇠사슬을 제국시대에 유럽연합군이;;; 끊어서 가져갔다;;

그 담에 빈 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것을

문화대혁명시절에;;; 황제숭배라고 홍위병들이;;; 나무까지 베어버렸다;;;;;;;

 

 

그런 연고로;;; 지금은 덩그러니 비석 두개만 남아있는데

중화민국 19년 3월에 저 비석을 세웠다고 새겨져있고

 

https://ko.wikipedia.org/wiki/%EB%AF%BC%EA%B5%AD%EA%B8%B0%EC%9B%90

 

중화민국 19년은 서기 1930년이 되겠다.

중화민국이라는 연호는 국민당 시절의 연호이고

국민당이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옮긴 이후 대륙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새겨진 타이틀을 보면 명사종明思宗이라.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묘호;가 사종思宗이라는건 알 수 있는데

 

저 여섯 글자중 명사종순국明思宗殉國까지는 알겠는데

마지막 글자는 처음 보는 글자다?;;;

 

 

중국 바이두에서 저 비석을 검색해보니

 

http://culture.people.com.cn/n/2015/0618/c22219-27174724.html

명사종순국처明思宗殉国处.

 

묘비의 마지막 글자가 장소를 뜻하는 처處라고 되어는 있는데

(處를 간체로 处라고 쓴다)

 

 

저 묘비의 글자 생김새

 

와 處의 형태랑은 매우 달라서;;

 

저 글자가 정말 處라서 바이두에 저렇게 검색결과가 나오는건지

아니면 장소를 의미하는 다른 글자인데

요즘 잘 안쓰는 글자라서 의미상 處라고 써놓은건지가 궁금해졌다.

 

 

황제의 '순국'이라는 뒤에 들어갈 만한

묘비 내지 무덤을 뜻하는 글자로 가장 가까운건

무덤 총塚인데

 

http://baike.baidu.com/link?url=TeZ_emuGPUFiqVr0AH6Vs3ltP8JQjbo-Ef08xpAsbZnFqxg-oJKcZH2zO_g7Q-iE7q98xvdh1w3FnzkkjBTNwK

전서;;;체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묘비에 새겨진 글자와 총塚의 형체와는 차이가 크다.

저 글자가 총塚은 아닌걸로 잠정 결론짓고

 

 

네이버 사전의 필기인식 기능을 활용.

 

 

 

묘비에 새겨진 글자를 따라썼더니

획의 결합형태를 파악, 정답 후보군이 쫘악 뜬다.

 

 

빨간색 동그라미는 처음부터 후보였던 處라서 일단 제끼는데

새로 나타난 파란색 동그라미 글자가 가능성 있어보인다.

 

...지만 뜻이 원숭이;;니까 후보에서 제외;;;;;;;;

 

마지막 남은 후보는 處밖에 없는데

글자 형제가 저렇게 다른데 정답일 수가 있을것인가.

 

 

사실, 태고에 진시황이 문자를 통일시키기 전까지

중국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글자들은 다 달랐다.

 

현재의 해서체는 글자모양이 거의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만

예서, 전서까지 한자 변화의 수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한 글자가 중국 각지에서 무척 다양한 모습으로 쓰이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시황 진시황;; 그러니까 존나 가까운거같지만 기원전 250년의 사람이다;;;

22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시황 이전, 문자가 통일되기 전의 흔적이 남아

한글자의 여러가지 체가 존재하는 것들을 이체자異體字라고 한다.

 

 

묘비의 글씨가 處의 이체자라는 가정 하에

處의 전서체를 검색해보았다.

 

 

 

 

 

處의 수천년전 전서체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획과 획의 결합 형태가 지금 저 묘비 글자와 유사성이 보인다.

묘비의 글씨가 處의 이체자일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處 异体를 중국 바이두에서 검색. (異體의 간자는 异体이다)

http://www.baidu.com/s?ie=utf-8&f=8&rsv_bp=1&rsv_idx=1&tn=baidu&wd=%E8%99%95%20%E5%BC%82%E4%BD%93&oq=%E5%86%A2&rsv_pq=b3e840dd0000abdb&rsv_t=68b8pNUIWau%2Bd2Yh6WoxFhUp2sIE5CbwlL3%2B4mo3Wm1ZUeocX9uetbN2de8&rsv_enter=1&rsv_sug3=25&rsv_sug1=10&rsv_n=2&rsv_sug2=0&inputT=2005148&rsv_sug4=2005872

 

 

http://www.zdic.net/z/23/zy/8655.htm 

으 이체자 존나 많다 진시황은 위대해

 

맞습니다;;;;;

 

 

 

http://hanja.naver.com/hanja?q=%E4%96%8F

 

중국어 사전에는 안나오고 한자 사전에만 나온다.

 

....그런 연유로 저 비석이 세워진 곳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가 목을 맨 곳處이 맞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고있지

 

 

 

저 장소가 나에게 왜 특별한가 하면

김용선생의 벽혈검碧血剑으로 돌아가보자.

김용의 무협은 역사에 허구를 교묘하게 결합한걸로 유명한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66779&cid=40942&categoryId=33397

동림당() 계열의 관료들이 “적이 성 아래까지 와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장성()을 허물 수는 없다”며 원숭환의 구명()을 호소했지만, 엄당() 계열의 온체인(, 1573~1638) 등은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며 처형을 촉구했다. 결국 원숭환은 1630년 9월 22일, 베이징의 서시(西) 거리에서 온몸을 잘라내어 죽이는 능지형()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광거문()의 광동의원()에 묻혔다.
원숭환이 죽은 뒤 요동()을 방위하던 병사들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명군() 장수들은 잇달아 후금()에 투항하였다. 이로써 명()은 급격히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명()이 멸망하고 만주족(滿)의 청(, 1636∼1912)이 중국을 지배하자, 원숭환은 한족()들에게 과거 송(, 960∼1279) 시대에 금(, 1115∼1234)에 맞서다가 진회(, 1090 ~ 1155)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악비(, 1103~1141)와 함께 ‘반청 흥한()’의 영웅으로 숭앙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숭환 [袁崇煥] (두산백과)

 

이 벽혈검의 세계관;;;은 명나라 말기.

억울하게 죽음당한 원숭환 장군(실존인물)의 아들 원승지(가상인물)가

농민군의 수장인 이자성(실존인물)의 휘하에 들어가 민중봉기에 참여하는 스토리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8%AD%EC%A0%95%EC%A0%9C

장녀 : 장평공주 주자아(長平公主 朱慈兒)

2녀 : 소인공주 주자홍(昭仁公主 朱慈泓)

3녀 : 낙안공주 주자람(樂安公主 朱慈覽)

 

그 와중에 황실의 장녀인 장평공주長平公主(실존인물)가

평민의 복색을 하고 궁궐 밖에 나와 원승지와 얼추 잘될뻔;;하다

남주는 황실을 무너뜨리려 하고

여주는 황실의 공주인 관계로;;; 결국 잘 안되는;; 스토리인데

 

 

http://baike.baidu.com/link?url=YeFmoRuD8oBUIXM2TVj4BVt2gpItRBmx9mYL5hBVXH0hF_gFVGn-kwN911Ifrjd9z6TujZUo8UNRwasqjAvLxq

 

여주의 본명과 생애에 대해서는 한국자료와 중국자료가 다르지만 넘어가자;;;

하여간 벽혈검의 세계관에서 저 여주는 황실에서는 장평공주이지만

강호에서 阿九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걸로 되어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5357&cid=40942&categoryId=31787

1636년 고영상이 죽은 뒤에는 틈왕()의 명칭을 이어받아 농민군을 이끌었다.

청군()은 오삼계()를 앞세워 산하이관[]을 넘어 베이징[]으로 입성()하였다.
이자성은 청군()의 공격으로 시안[西]마저 포기하고 퉁관[], 샹양[] 등지로 퇴각을 거듭하다가 1645년 후베이[]의 퉁산[] 인근의 구궁산()에서 죽었다. 
‘이자성의 난’으로 불리는 명() 말기의 농민반란은 명()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것을 유지하지는 못하고 정복왕조()인 청()의 지배를 불러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자성의 난 [李自成─亂] (두산백과)

 

이자성의 농민군이 자금성으로 쏟아져 들어올때

숭정제는 목을 매기 전에, 여자들이 욕보임을 당할까봐 모조리 죽였지만

장평공주는 왼팔을 잘리는데 그쳤다. (그때 같이 죽었다는 설도 있다)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숨어 살다가 청나라 황실에 자수;했고

평민과 결혼해서 오래오래 살았다는 설이 있고(한국자료)

그 난리통에 16살에 죽었다는 설이 있지만(중국자료)

 

 

김용선생이 만든 벽혈검의 세계관에서;;; 저 장평공주는

출가하여 중이 되어 화산파;;의 고수에게 무공을 전수받는다.

 

그 법명은 九难이라 하고

 

 

30여년뒤,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녹정기鹿鼎记의 세계관에 외팔여승独臂神尼라는 캐릭터로 다시 등장하여

황제를 암살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위소보를 제자로 받아들여 백변신행이라는 도망가는법을;;;전수한다.

 

 

 

나라가 망한지 수십년이 되었으나 명의 부흥운동은 계속되는 중.

반청복명反淸復明, 청나라를 뒤집어 없고 명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천지회(실존집단)의;;; 영웅호걸들과는 오해가 있었으나

신분이 명나라의 마지막 공주였기때문에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8239&cid=40942&categoryId=34333

그는 즉시 청군과 결탁, 청군의 선도()가 되어 베이징을 탈환하였고, 청나라의 중국 본토 진출에 중대한 역할을 함으로써 평서왕(西)에 봉하여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삼계 [吳三桂] (두산백과)

 

이 무협지 모든 등장인물이 오삼계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데;;;

오삼계에 의해 멸망한 나라의 공주이기에 증오는 가장 높아

그의 딸을 납치해 아버지를 모르게 키워 아버지를 암살하도록 시키기도 했으며

그와 이자성(죽었지만 소설상으로는 살아서 숨어있던)을 맞다이;; 시키기도 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57490&cid=40942&categoryId=34308

당시 명()나라의 마지막 세력이었던 계왕()은 이미 멸망하고, 반청세력이었던 정성공()도 사망하여 중국의 지배가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평정()을 맡았던 윈난[]의 평서왕(西) 오삼계(), 광둥[]의 평남왕() 상가희(), 푸젠[]의 정남왕() 경계무()와 그 아들 정충()의 삼번왕()은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독립정권을 유지하며 청나라를 위협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희제 [康熙帝] (두산백과)

 

녹정기를 보다 보면 스토리가 정말 얽히고 설켜있으며

등장인물 또한 복잡하기 그지없다.

대체 쟤들이 왜 싸우고 왜 미워하는지;;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명말 청초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저 스토리에 몰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운남 목왕부와 천지회와의 대립은

명 황실의 자손 중 누가 다음 황제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왜 독립운동 하는 새끼들이 서로 못죽여 안달인지 이제서야;;; 납득이 가려 한다.

 

 

https://namu.wiki/w/%EB%82%A8%EB%AA%85

남명은 동시에 여러 황제가 각지에서 나와 내부에서 서로 정통성을 놓고 다투는 구도였다. 아래의 황제 목록에 있는 남명 황제들은 편의상 대수로 정리했지만, 거의 다 차례대로 즉위한 것이 아니라 '병립'한 것. 각각 정권을 만들어 통치기간이 겹치고, 이 정권들은 서로를 인정하거나 협력도 안했으며 심지어 팀킬전투를 벌이기까지 하는 병크를 일으켰다.

 

남명;;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상해임시정부;;; 정도.

녹정기를 보면 알겠지만 독립운동;; 한다는 놈들이 서로 존나 싸우느라 병크가 따로없는건 한중이 공통;;;

옛날 옛적에 이승만이랑 김구랑 김일성이랑

 

 

하여간, 명말 청초의 역사와 실제인물을 바탕으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시기의 벽혈검에서

청나라 초에 이자성이 남긴 보물을 두고 벌어지는 설산비호를 거쳐

청나라 중기에 명나라 부흥을 꿈꾸는 녹정기까지 이어지는 장구한 무협 드라마를

 

경산공원 명사종순국처明思宗殉國處에서 떠올릴 수 있어서;;

나에게는 매우 뜻깊은 장소였지만;;;

역덕, 무협덕이 아니라면 굳이 이따위 경산공원에 올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역사나 무협을 모르더라도

자금성을 내려다보는 이 고즈넉한 정취는 일품의 안주.

나는 아침에 올랐으나 가급적 뉘엿하니 해질무렵 술 1병과 함께 오르길 추천한다.

 

https://namu.wiki/w/%EC%88%AD%EC%A0%95%EC%A0%9C

공인 자료는 아니지만 나무위키의 설명이 더 알기 쉽다.

역시 역사설명은 역덕;에게 맡겨야.

 

 

헥헥 이제 설명 끝; 설명충 극혐.

설명은 보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이정도로 하려면 하는;;; 사람도 진이 빠진다.

 

 

경산공원 후문 바로 건너편이 자금성 후문.

중국인들이 끝없이 꾸역꾸역;;;쏟아져 나오는걸 보니

저 유구한 역사의 감흥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음 행선지인 이화원으로 출발.

이전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었던 해자에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보트놀이를 하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화원 입구에 도착.

 

전형적인 관광지;; 밥집에서 그냥 한끼를 때운다.

이화원은 중국 각지는 물론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

다시는;; 안볼 손님을 상대로 뜨내기 장사 하는 집에서

영혼;;이라든가 신념;;같은걸 기대하면 안되겠지.

 

맥주;;를 먹기 위한 안주라는 개념으로 볶음밥을 넘긴다.

중국 맥도날드나 먹을껄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깐;;;

 

관광지 화장실에서 여러번 당해봤기때문에;;;

이화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식당에서 화장실을 해결.

다들 더러운;;꼴 보기 싫으면 화장실은 밖에서 가자.

 

 

 

정문을 들어가는 순간 중국인들로 가득한 헬게이트가 시작됩니다;;

 

 

자금성에서처럼 존나 문둥병;;;걸린 바위 갖다놓고 감상하라는 미적센스.

 

영어 불어 한국어 일본어로 된 안내판을 보니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오는지 알 법하다.

 

안내판과 가이드북을 번갈아 보고는 방향을 지시하는 마누라.

사람이;; 파낸 이 호수는 가로 3킬로미터 세로 3킬로미터가량.

우리는 이 호수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로 합니다.

 

사람이 참 많았다.

사람이 정말 많았어;;

사람 구경하다 쓰러질;;; 지경이야.

 

어제 자금성에선 앉았다가는 못일어날까봐 계속 걸어다녔는데

오늘은 사람에 지쳐 거의 10분마다 앉아서 쉬었다.

 

 

저 호수는 황제가 까라면 다 까는 중국인들이

황제가 파랬다고;;; 진짜 맨땅을 파내서;; 만든 昆明호수.

 

수백년전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눈물로 파낸 호수의 풍경을

지금 그 사람들의 후손들이 망치고;;;있는 중이니

조상의 한을;;; 갚고 있다고 봐야 되는건가.

 

중국의 자원은 사람이건만

중국의 공해;;;역시 사람이다.

 

그 서태후가 유유자적 거닐던 황실의 고느적한 정취를

저렇게 수많은 중국인들이;;;;;; 오염시키고;;; 있는 꼴을 보면

서태후가 무덤을 반으로 쪼개고 뛰쳐나올듯;;

 

 

 

째지는듯한 여자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키스;;;하려 함;;;

역시 대륙남의 사과방식은 호쾌한가요???;;

 

여자가 밀쳐내면서 존나 남자를 패며 계속 소리를 지르니까

무릎 꿇고 여자의 하체;;를 얼싸안으며 사과하고 있는 대륙남의 뒷모습.

 

저 광경을 대륙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사진찍고 있다;;;

나도 중국인인척 하면서 사진을 찰칵;;;;

이화원은 경치 구경보다 싸움 구경이 훨씬 재밌음.

 

여러분도 이화원 가면 싸우는걸 놓치지 마세요.

저 온도 저 습기 저 인파면 분명;;히 누군가 싸울겁니다.

 

 

 

보트로 가득차 숨이 턱;; 막힐 듯한 호수주변을 맴돌다

난데없이 가방을 내려놓고 창을;;;하는 대륙아저씨를 다들 모여들어 구경하는 중.

 

정말로 여긴 이런 이벤트;;;라도 없으면 지겨워서 미칠지경;;;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가도 가도 사람;;;;;뿐이다.

 

옛날 양식으로 멋지게 지어놓은 정자에 올랐더니

그 복원의 디테일은 역시나 made in China의 센스;;;;

흉하게 드러난 전선들은 꼭 저 지붕에 박아넣어야 했을까.

 

정자 안의 칠 또한 색이 더럽;;;게 바래있다.

문화재를 일반 대중에 공개하다 보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공산국가답게 이 인파들 엄격히 통제하고

일년에 몇차례만 입장을 허용해서

옛날 이화원의 그 정취를 철저히 복원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누가 포토샵으로 길을 메운 사람들과 호수를 채운 배들을 깨끗하게;;좀 지워 줘;;;;

이 풍경을 망치는건 바로 사람들이야;;;;

 

 

이화원 여기저기 구경거리가 참 많다고 말은 하는데

문화재의 맛은 사라지고, 그 거대한 규모;;;와 그 수많은 사람;;;밖에 없다.

이미 한없이 이어지는 똑같은;;풍경과 계속 등장하는 사람들;;로 지쳐버렸다.

 

한참을 걸어 이화원을 1/4바퀴;;쯤 돌았더니 보트를 타는 곳이 나타났다.

앞으로 3/4바퀴를 더 걸어야 밖으로 나갈수 있다고 생각하면 환장을;;할 지경인데

호수를 가득 메운 인력;;; 보트의 하나가 되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보트를 타고 어디어디 갈 수 있는지와 요금이 나와있는데

목적지 중에 동물원动物园이 있다?;;

 

동물원은 이화원을 나가 한참 밖에 있는 것.

그럼, 이 호수 안에서만 도는 뱃놀이 말고

밖으로 나가는 교통수단으로 쓰는 보트가 있는건가?

 

 

...라는 내용을 저기 매표소 아저씨한테 물어보더니

동물원 가는 배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아저씨가 무슨 일이냐고 다가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잠시 당황;;하다가

동물원 가는 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배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지금 들어오고 있는 용머리龙头달린 배라고 합니다.

 

 

언제 출발하냐고 했더니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동물원 가는거 정말 맞냐니까 진짜 맞다고 합니다?;;;

 

저 큰 배에 딱 우리 둘만 탔음;;;

우리한테 끊어준 승차권은 손으로 슥슥 쓴게 뭔가 야매였음;;;

가격도 표시된 가격이 아니라 다른 가격을 받았음;;;;

 

원래는;;; 없는 배편을 자기들 용돈;;;벌려고 갑자기 만들어준듯?;;;

여기가 중국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모든 게 납득이 갑니다.

 

동물원 가는 배가 없다는 사람은 신입;;이고

동물원 가는 배가 있다고 유연;;하게 대처한 사람은 고참인듯.

 

 

....밖에 가득한 보트들은 다 발로 밟아 가는 거였던거임;;;;;;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나 중국스럽지 아니한가;;;;;;;

 

외국인은 그저 즐거워 하고 있는 모습이

인력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건지도.

 

 

처음 배 모는 아저씨가 우리 둘만 덜렁 어딘가에 실어다 놓고는

이 자리에 다음 오는 배를 타고 가면 된다고 말해줬다.

 

불안해서 지나가는 공원 아가씨 직원에게 표 보여주며 동물원;가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 표는 처음본다고 했다?;;;;;;

그 아가씨가 아줌마;; 직원에게 표 보여주며 이게 뭐냐고 물으니까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냥 타면 된다고 한다?;;;;;;

 

...확실히 우리가 산 표는 공원 직원들 용돈;;;하는데 쓰이는 듯;;

신입은 모르지만 고참은 알음알음;; 아는거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름은 배에 탄 사람 명단에는 없는거다;;;;;;;

저 배가 침몰하면 우리는 돌고래호;;;꼴 나는거다;;;;;

 

 

그러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 앞에서

상쾌하게 수영을 즐기는 대륙인들을 보니;;;

사고에 대한 걱정이 많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여차;;;하면 저 대륙인들이 구해주겠지;;;;;

 

 

 

여기는 수상버스;; 정류소.

내가 hsk 6급인데도 배 모는 할배;;; 중국어는 못알아듣겠더라;;

할배 앞에서 당황하고 있으니 손자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여기까지 데려다 주었다.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것에 안도한 마누라가

춤을 추다가 에너지 고갈로 늘어져있다.

 

 

 

수상버스 도착.

 

아까 용머리;; 배는 昆明호수 안에서만 왔다갔다 하는 관광용인거고

여기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교통수단용 배를 탈 수 있는거다.

 

물론 만두가;; 되긴 싫으니 선장한테 동물원 가는지를 다시 확인.

동물원 가는건 맞는데 역시;; 우리 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무시하고 탑니다;;;

 

 

 

호수 한가운데에서 배를 타고 호수 끝까지 도착.

이 배를 타면 한방에 빨갛게 표시된 지하철역;;에 도착합니다.

 

안걷고 앉아있는것도 살겠는데

가만히 있어도 이동하고 있으니 정말 심봤다는 기분.

와 시발 저게 걸어서;;;이화원에서 나와서 버스 타고가면 몇시간이야 진짜;;;

이 배를 안탔으면 진짜 싸웠을 수도 있을거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개의 다리 밑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낚시꾼들.

낚시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넘쳐나지만 대륙에 그런건 없습니다;;;

 

중국은 최근에 짓는 건물도 중국 전통 스타일로 짓기때문에

저 다리가 명대;에 지어진건지 청대;에 지어진건지

작년에;; 지어진건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전통과 짝퉁이 혼재된 혼란스런 느낌.

 

 

 

당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위해

물놀이, 수영, 낚시, 스케이트를 삼가해 주세요.

 

 

 

좆까!

 

배를 따라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대륙 할배의 패기.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드는것도 사실.

 

 

 

꼭 저렇게 하지말라;;;는 표지판 있는데만 골라서

그 하지말라;;;는 짓을 하고야 마는 것이 대륙인의 기상.

 

 

 

이제 여기서 내림.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강 하구 변에 있는 아파트들인데

건물 생긴;;건 저래도 위치랑 풍경상 집값은 엄청 비쌀듯.

우리집 팔아서 중국오면 저 집 살수 있을래나.

 

낚시하는걸로 봐서 물도 깨끗할것같고.

 

근데, 여기에서 내리라고 한 다음에

다른 정보는 알려주지 않고 가버렸고

물길도 좁아져서 더 이상 배로는 못갈것 같긴 한데

 

 

 

구글맵으로 확인해 본 동물원은

여기에서 좀 더 가야 하는게 맞다.

물살이 좁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강은 이어져있다.

 

 

여기까지 편히 앉아 왔으면 본전은 다 뽑은 셈이긴 한데

혹시 다른 배로 갈아타서 더 갈 수 있는건지 시험삼아 따라갔더니

 

 

 

세이프!

 

 

이번에 갈아타면서 또 선장한테 우리의 야매티켓;;을 보여주었더니

역시 처음 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는데;;;

모른척 올라탔더니 굳이 제지하지는 않는다;;;;

 

생전 처음 보는 표지만 그런 표가 세상 어딘가 분명히 있겠지 뭐;

라는 달관한 표정이다;;;;

 

하도 짝퉁과 관시关系가 넘쳐나는 나라이다 보니

잘만 이용하면 이런 좋은 점이!

 

 

 

이제는 경치가 확실히 아기자기하게 바뀌어

마을 한복판에 있는 냇물을 타고 동네 산책을 하는듯한 느낌.

관광도;; 하고 이동도 하는 최고 편안한 선택에 마누라가 즐거워하고 있다.

 

이화원 한복판에서 저렇게 배를 타고 나와

동네 한복판을 뚫고 지하철;;;까지 가는 경험은

한국사람들이 거의 해보지 못한 득템일듯.

 

이화원에 가면 진 빼지 말고 배를 타세요.

우리처럼 지하철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이화원 입구까지만 타고 나와도 가격대비 엄청난 시간 체력 세이브가 됩니다.

 

 

 

궁뎅이;;의 절반을 강쪽으로 내민채

계속 좌우로 흔들어 대고 있는 차이나독.

동영상을 찍었어야 했는데 타이밍이 안좋았어.

 

 

 

폭이 좁아지자 물살이 세차게 흐른다.

신기하게 생각해서 물에 손을 대 보려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다가 엄마한테 디지게;;혼난 중국 키드.

뒷통수에 쓰인 중무룩;;이 인상깊다.

 

 

이 아지매가 걔 엄마.

 

배가 서더니 안내원이 뭐라고 뭐라고 한다.

그냥 주변 경치 설명해주는 건줄 알고 건성으로 듣는데

반복하길래 귀기울였더니 여러분중에서 두사람은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파란색蓝色 표를 가진 사람은 여기에서 내리라고 하는데.

나는 파란색은 중국어로 청색青色이라고 부르는줄 알았다.

그런데 남색蓝色 어쩌구 하길래 우리 얘긴줄 모르고 그냥 들었다.

그리고 저 표가 딱히 남색;;;은 아니고 말이지;;

 

 

우리 얘기구나;; 싶어서 급히 표를 보여주니까

이느므 시키들 이제서야 기어나오는구나;;하는 표정으로 얼렁 내리라고 했다.

여기서 더 가면 동물원 관광코스니까 돈 더 내야 되는거라고.

동물원에 안들어가고 동물원 역;;에 가는 사람은 여기 내리는거라고.

 

 

배를 내려 걸어서 동물원을 통과.

저 거대하지만 굉장히 없어;;보이는 조각이 참 중국스러움;;;

 

여기 내린 김에 동물원 구경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네시가 넘고 하루종일 걸어 피곤한 판에 스케줄 추가는 아닌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가이드북;;을 보았더니, 이 동물원이 규모가 엄청 크긴 한데

볼만한건 팬더;;;말고는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 팬더역시 그냥 하루종일 존나 가만히;;;있기 때문에

새벽에 가야 비로소 그 팬더가 꼼지락;;하는 거라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 시달리던 이화원에서 배를 타고

 

한방에 지하철역까지 왔다. 참으로 이질적인 체험이다.

 

 

동물원까지 가는 배 있냐고 두번이나 캐물었던 선택은 정말 탁월했다.

순간적으로 없던 배편을 만들어서 용돈으로;; 쓴 매표소 직원들의 판단력도 놀라웠다.

 

长廊;; 등등 다양한 스팟을 구경 못한것에 대해서는 한점의 후회도 없다.

그 규모;;;와 그 인파;;;는 충분히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오늘 이화원에서 저 배를 타지 않았다면

체력을 다 빨린채로 해 저물때쯤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것이고

아무래도 저녁 스케줄은 취소하고 숙소로 가야 했겠지.

 

 

 

오늘 배를 타고 온 루트는 위와 같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구글지도는 유용하지만

중국에서;;;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만큼

아아 만두가 되지 않겠구나 마음이 놓이는 일은 없다.

 

내가 쓰는 여행기는 한편이 보통 하루에 있었던 일로 구성된다.

그러나 사진과 설명의 분량;;상 하루를 두편으로 나눠 쓸수밖에.

 

Posted by 닥터불